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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Story

맑은 마음을 화폭에 담다. 엄기환 그를 알아보다



맑은 마음을 화폭에 담다. 엄기환 그를 알아보다.
 

가로등으로 밤을 잊은 도시와는 달리, 달빛이면 충분했던 시골길에 누워 있으면, 밤하늘의 별을 음계삼아 노래하는 소쩍새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어릴 적 자연은 늘 곁에 둘 수 있는 좋은 벗이었다. 그 자연의 소리를 찾아 공주 마곡사 깊고 깊은 숲속에 작업실을 만든 이가 있다. 먹으로 자연을 노래하는 작가 엄기환이다.
 
 


소쩍새의 소리를 찾아
작업실 앞으로 흐르는 작지만 웅장한 폭포수, 이슬을 머금어 더 파릇하게 빛나는 푸른 나무들,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자리한 작은 새들과 풀벌레들이 속삭인다.작업실 밖 풍경은 우리가 그렇게도 찾고 찾았던 ‘힐링의 숲’이다. 이곳에서 작가는 보이는 대로 그린다. 수많은 산을 다니며 수묵화를 그려왔지만 역시 어릴 적추억을 찾아 맨손으로 일구어낸 지금의 작업실 밖 풍경만큼 아름다운 소재가 되는 곳은 없다. 무엇을 그리고, 보는 각도에 따라 늘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유니크(Unique)한 숲속 작업실
밤하늘의 달빛과 별빛을 보면서 듣곤 했던 아련한 기억을 찾아 엄 작가가 이곳에 작업실을 만든 지도 어느덧 12년째다. 이렇게 된 것이 ‘화가는 혼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작가의 고집일수도, 이번 생애 작가에게 주어진 운명일수도 있다. 언제라도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랑방과 작업실 곳곳에서 자연의 절경과 소리를 느낄 수 있다. 폭포수와 만나는 수간교는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고, 돌계단은 불규칙적으로 쌓아 재미를 더했다. 폭포수 상단 부분에는 잘박하게 발을 담글 수 있도록 평평한 자리를 만들어뒀다. 맛있기로 유명한 공주 마곡사 밤막걸리 한 되 받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자면, 힘든 세상살이도 물 흐르듯 씻겨 내려갈 것 같다. 작업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간이 편리하게,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재창조되고 있었다.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인생, 잠시 여행하는 것
시인 나태주는 이렇게 읊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한 천년 누군가의 그림 속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문득 세상 일이 궁금하여 뒷짐지고 슬슬 현생(現生)에 나타난 것 같은 사람’이라고.엄 작가는 자연에 심취해 혼자 있는 것이 곧 행복이다. 이곳에서의 삶이 잠시 여행 떠나온 것이기에 욕심과 이기를 버리고 자연과 살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홀로 대화를 나누면서 수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지금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죽게 되면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세상에 모든 자연과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엄 작가는 산과 나무, 물과 바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자연을 바라보는 맑은 마음으로 붓끝이 가는대로 먹물의 강약을 만들어내며 작품의 맛을 살린다. 맑고 투영한 달빛 그림자를 닮은 작업실 안쪽 벽에 걸린 작품들을 바라보자니 밖에서 자연의 소리가 조화롭게 들려온다.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하다.